인생 성취의 8할은 운.
자신의 노력보다 출신과 성장 배경이 큰 몫을 한다.
‘능력주의’가 말하는 ‘능력만큼 보상받는다’는 공정하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능력’이 어떻게 생기는지 생각해보면 ‘운’이 많이 작용한다.
‘능력주의’가 젊은층을 중심으로 인기있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능력에 따른 보상을 하지 않으며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1970년대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의 대학 졸업시절은 학점이 낮아도, 자격증 하나 없어도 왠만한 직장에 취직할 수 있었다. 하지면 오늘날의 20대는 시대를 잘못 만난 탓에 치열한 입시와 학점 경쟁, 끝없는 자기계발 뒤에도 취업이 어렵다. 이들이 간단한 컴퓨터 프로그램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세대가 요직을 차지하는 게 부당하다고 느끼는건 당연하다.
이 글에서는 능력주의 사회의 보상이 정말 능력에 따른 것인지 그리고 ‘능력주의’의 부작용도 살펴본다.
인생성취의 8할은 운이다.
우리가 태어나고 첫번째로 만나는 운은 ‘어디서 태어났는가’이다. 세계은행 출신 경제학자 브랑코 밀라노비치는 태어난 나라가 평생 소득의 절반 이상을 결정한다는 것을 설명했다(Branko Milanovic, 2015). 태어난 나라의 평균 소득과 불평등지수만으로 성인기 소득의 최소 50%를 예측할 수 있다.
저개발 국가에서 태어나면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성공할 가능성이 작다. 그 이유는 고등교육을 받기 어렵고 대학을 졸업해도 좋은 직장을 얻기 어렵다. 사업가로 성공하기도 매우 힘들다. 자본도 부족하지만 부패와 법 집행의 자의성, 불합리한 규제, 인프라 부족 등 넘어야 할 산이 높고 많다. 우리는 대한민국 이라는 선진국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상위 20% 안에 들어가는 운 좋은 사람들이다.
다음으로 만나는 운은 ‘부모’이다. 사람의 성취와 행동에서 유전 요소와 환경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두고도 많은 논쟁이 있었다. ‘본성과 양육’ 논쟁이라고 하는데, 유전 요소가 중요하다면 운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환경 요소가 중요하다면 아이의 운명을 바꿀 여지가 더 많을 것이다.
부모는 유전·환경 요소를 모두 제공하므로 둘의 역할을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데,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입양된 아이들을 연구하였다. 미국 다트머스대학의 브루스 새서도트가 홀트아동복지재단을 통해 미국에 입양된 대한민국 출신 아이들을 추적 조사한 연구가 유명하다(Bruce Sacerdote, 2007). 양부모가 입양할 아이를 고를 수 없으므로 아이들은 사실상 무작위로 입양가정에 배정되었다. 입양자녀는 부모에게 환경만들 제공받고, 찬자녀는 유전과 환경을 모두 받으므로 이들을 비교 분석하는 것이다.
그 결과, 찬자녀들 간의 상관관계를 교육수준이 0.378, 소득이 0.277인 데 비해 친자녀와 입양된 아이의 상관관계는 이보다 낮은 0.157(교육), 0.110(소득) 이다. 이것은 환경이 동일하더라도 유전 요인이 교육과 소득에 상당히 영향을 주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이 논문은 유전이 교육 영향의 44.3%를, 소득의 32.4%를 설명한다고 결론짓는다.
입양자녀 – 친자녀 | 친자녀 – 친자녀 | |
교육수준 | 0.157 | 0.378 |
소득 | 0.110 | 0.277 |
키 | 0.014 | 0.443 |
몸무게 | 0.044 | 0.273 |
자료: Sacerdot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2017
또한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부모에게서 유전자를 물려받고 부모가 어린 시절 환경도 상당 부분 제공하기 때문이다. 부모를 자기가 결정하는 사람은 없는데, 어떤 부모를 만났는지도 명백히 운이다. 그렇기에 “인생 성취의 8할이 운이다”는 전혀 과장된 말이 아니다.
성취의 또 다른 척도인 ‘건강’도 운이 중요하다. 우선 태어난 나라가 기대수명을 크게 좌우한다. 그 나라의 소득수준과 의료시스템 등이 기대수명에 영향을 준다. 몇 년 전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연구팀은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18가지 주요 암의 발생 요인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Tomasetti, Li, and Vogelstein, 2017). 크게 유전, 환경, 세포분열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연적 요소가 암 발생 요인이다. 연구결과 암 발생의 50% 이상이 우연에 기인한다. 게다가 부모가 물려준 유전도 운이다. 사람의 노력으로 예방할 수 있는 환경 요인은 ¼도 미치지 않는다. 결국 사람의 건강도 운이 8할을 좌우한다.
정말 능력만큼 보상받나
칠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다. 칠레대학과 칠레가톨릭대학은 칠레의 명문대학인데, 인문계의 경우 경영학과 법학 전공이 인기가 많다. 입학 자격은 철저히 시험 성적으로 정해진다. 이곳을 졸업한 1.8%가 주요 기업 요직의 41%를, 상위 0.1% 소득자의 39%를 차지하는데 우리나라 상황과 비슷하다. 우리나라도 시가총액 상위 30개 기업 임원의 25%가 이른바 ‘스카이(SKY)대학’ 출신이다. 여기까지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더 많은 보상을 받는다는 원칙이 맞는것 같다.
세스 지머먼 미국 예일대학 교수의 연구는 명문대 진학의 과실이 특정 집단에 집중되는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Zimmerman, 2019). 위 도표는 칠레의 명문대에 아슬아슬한 점수 차이로 입학한 학생과 간발의 차이로 탈락한 학생의 졸업뒤에 상위 0.1% 고소득자 또는 기업 임원이 될 확률을 보여준다. 특정 사건(입학 커트라인)으로 운명이 바뀐 사람을 분석하는 것을 ‘회귀 불연속 설계’ (Regression Discontinuity Design) 이라 한다.
윗줄 그림은 고소득자가 될 확률을 입시점수별로 본것인데, 가운데 붉은 선이 명문대 입학 커트라인이고 커트라인 양옆에 있는 학생들은 대입 시험 점수 차이가 거의 없어 능력은 비슷하다. 유일한 차이는 커트라인으로 인한 명문대 합격 여부이다. 그래서 명문대 합격이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볼 수 있다.
‘명문대 효과’도 사립고 출신 남성에 쏠려있다.
왼쪽 도표에서 초록색 네모는 전체 평균, 오랜지색 동그라미는 남자, 청색 마름모는 여자의 경우인데, 명문대 입학은 고소득자가 될 확율을 50%가량 상승시킨다(1.4%에서 2.1%로 증가). 그런데 이 효과는 남자에게서만 발견된다. 여성이 고소득자가 될 확률은 남자보다 낮고, 명문대에 진학하더라도 변하지 않는다. 오른쪽 그림은 출신 고등학교별로 나눠본 것이다. 초록색 동그라미는 학비가 비싼 명문 사립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이고, 오랜지색 마름모는 일반 공립학교를 나온 학생이다. 놀랍게도 명문대 진학 효과는 사립고등학교를 나온 학생에게서만 발견된다. 아랫줄 두 그림은 기업 임원이 될 확율을 분석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명문 사립고등학교 출신 남자만 이 명문대에 진학한 효과를 독차지함을 보여준다.
칠레의 연구는 인생의 성공에 운이 크게 작용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시험 점수 1점 차이로 고소득자가 될 확률이 50%나 증가한다. 그리고 사회에서의 보상이 결코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이뤄지지 않는 점도 확인 할 수 있다.
이것이 과연 칠레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막혀 이런 분석을 할 자료를 정부가 제공하지 않는데 많은 사람이 서울대 진학의 효과가 인생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주는지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실은 일부 명문고 출신에 집중됐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가 그의 책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제시한 제비뽑기에 의한 대학 입시 방안이 있는데, 명문대 지원 학생 중 합격자 대비 세 배수 정도는 우열을 쉽게 가리기 어려울 만큼 모두 뛰어난 사람이다. 이들을 더욱 촘촘히 줄세우기보다 제비뽑기로 입학시킴으로써 본인의 인생에 얼마나 운이 크게 작용하는지 피부로 느낄고, 성공이 스스로 얻은 게 아님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태도와 인식을 바꾸는 건 우리나라가 장기적으로 복지국가로 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자신의 성취도 사실 대부분 운으로 자신의 힘만으로 이룬 게 아니니까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겠다. 단, 그렇다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다면 결국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